지난 30년 동안 한국은 민주주의와 함께.
자신을 선비라 하지 않으면 섭섭할 것이다.두 사람 모두 ‘시의(時宜)를 제대로 알아 가장 현실적인 일에 넉넉하게 대처할 능력을 지닌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때로는 진부하리라 여겨지는 옛말이 가슴에 딱 와 닿은 경우도 있다.자나 깨나 나라와 백성을 걱정하던 애국심으로 보거나 두 분은 많이 닮은 점이 많다.비록 자신들이야 재상이 되지도 못했고 역할을 부여받지도 못했으나.
옛날이야 선비라는 남편은 집안 살림을 모르고 아내가 살림을 하던 시절이어서 어진 아내는 집안의 가난을 해결할 능력이 있을 경우가 많았을 터이다.참선비의 학문이란 치국안민에 근본적인 뜻이 있고 오랑캐를 물리치고 국가재정을 넉넉하게 하며.
재상이야 잘만 고르면 언제라도 역할을 할 수 있을 때의 말이었다.
박석무 다산학자·우석대 석좌교수 요즘 사용하는 말들이야 당연히 참신해서 좋다.일본 제국이 영원할 것이라 생각했다.
당시 일본 문서들을 보면 일부 정치인들의 ‘정한론을 제외하고는 19세기 말까지 일본 정부의 공식 문서 속에 한국의 식민지화라는 단어를 찾기 쉽지 않다.조청수륙무역장정을 맺도록 강요하였다.
그런데 그 전쟁은 한반도에서 시작되었고.아울러 1894년 동학농민 전쟁 때 일본의 대규모 파병과 함께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은 조선의 부국강병을 위해 개입했다는 일본의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증명해준다.